혹시라도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DVD를 구입하셔서 보너스 트랙을 열심히 보신 분이 계실까요??

토이스토리 2에 들어있는 DVD들, 하나엔 영화가, 다른 하나엔 보너스트랙



보통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되면 Behind the Scene 이라고 해서 영화 제작하면서 생겨났던 에피소드들, 제작진의 인터뷰, 삭제된 씬들, 캐릭터 디자인 등의 부가 자료를 DVD에 함께 수록합니다.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로 스토리보드를 포함해서 제작자들의 에피소드 들을 볼 수 있는데요. 저희 애니메이터들에겐 이게 굉장히 좋은 자료가 됩니다. 그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준비과정들을 볼 수 있거든요. 물론 직접 참여한 애니메이터에 비할 정도는 못되는 정말로 두리뭉실한 정보이긴 합니다만...

혹시 이런 정보들이 궁금하셨거나 애니메이션 제작과정이 궁금하셨던 분들이 계셨다면 잘 오신겁니다.

이 포스팅에서는 픽사나 드림웍스같은 미국의 대형스튜디오에서 3D 애니메이션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 해 볼까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게 항상 맞지는 않을겁니다. 어떤 회사는 그들만의 방식대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지금껏 듣고 보고 경험했던 게 어느정도 되다 보니까 얼추 다들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더군요. 그 경험들을 토대로 애니메이션 제작 순서에 대해 이야기 해 볼까 합니다. 단 "미국 대형 스튜디오들의 3D 애니메이션"입니다.
   

일단 한번 라따뚜이를 감상해 보실까요? 자막은 없으니 그냥 영상만 보셔도 좋습니다.


라따뚜이에 나왔던 시퀀스를 만든 과정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귀한 자료입니다. 동영상은 스토리 -> 레이아웃 -> 블락킹 애니메이션 -> 애니메이션 -> 시뮬레이션(옷,머리) -> 이펙트 -> 라이팅 의 순서로 진행 되는데 사실 전체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앞뒤로 붙는게 좀 더 있습니다. 하나씩 짚어 보도록 하지요. 크게는 프리프로덕션 -> 프로덕션 -> 포스트 프로덕션 으로 나뉘고 그 카테고리 각각에 아래의 단계들이 있습니다. 


A. 프리프로덕션

1. 아이디어 구상

여기 애니메이션 회사의 아이디어 구상에 대한 좋은 예가 있습니다. 흐흐


위 대화를 잠시 해석해 볼까요?

픽사

"장난감에 대한 영화를 한번 만들자! 뭐랄까 음 오래된 카우보이 장난감이 하나 있는데 최신 킹왕짱 SF우주전사 액션피겨 때문에 버림받는걸 두려워하는 뭐 그런??"

"쥐가 하나 있는데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한 소년이랑 팀을 만들어서 요리사가 되고 싶어해!"

"수퍼 히어로 가족이 있는데 사회에 불만많은 한때 팬이었던 소년이랑 싸우는거야! 그 소년은 세상을 전부 수퍼히어로로 만들어버리는게 꿈이지!"

"버려진 지구를 청소하는 조그만한 로봇이 있는데 어느날 신세경같은 여신같은 로봇이 짠 하고 나타나서 둘이 사랑을 하는건 어때?"

"웬 늙은이가 수천개 풍선은 집에다 매달고 남아메리카 여행을 떠나는거지! 죽은 와이프의 소망을 대신 이루기 위해서!"

"애들은 옷장속에 괴물이 진짜로 산다고 믿지. 근데 그게 정말 진짜라면? 그래서 그 비명소리로 먹고사는 괴물들이 있다면?"


드림웍스

A: "음, 보자... 말하는 동물들이 있고.. 그넘들은 뭔가 좀 달러. 동물같지 않은 행동을 해."

B: "음 그리고 그들은 전부 이런 표정을 하지?"

A: "님 짱이셈!"
   


사실 이 그림은 실제 일어났던 이야기를 한게 아니라 드림웍스 스토리에 대한 풍자를 하기 위해 누군가 만든 건데요.(전 개인적으로 공감합니다 ㅋㅋ) 그래도 어떻게 애니메이션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지를 잘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대략,

(1) 회사 내부의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서
(2) 사장이 만들고 싶은 스토리를 직원들에게 알려줘서
(3) 잘 만들어진 이야기를 사와서

이렇게 만드는게 일반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의 첫걸음입니다. 물론 변수가 많지요. (1)로 시작한 스토리가 산으로 가면 사장 또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길을 알려준다거나, 사장이 점심먹다 (2)를 넌지시 말하면 그후 관련부서 전 직원이 (1)을 통해서 살을 붙이기도 하고, 백만불을 주고 (3)을 사와서 (1)과 (2)를 거쳐 각색하다보니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기도 하지요.

또는 파격적으로 좋은 캐릭터나 배경의 디자인이 먼저 나와서 이런 캐릭터를 가지고, 또는 이런 배경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방식도 있습니다만 흔하진 않고 성공확률도 없어보입니다. 뭐든지 기초가 중요하지요.
 
자 이제 훌륭한 아이디어가 나와서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 것 같으면 회사의 허락을 받습니다. 즉 프로덕션팀이 꾸려집니다. 프로듀서는 예산을 편성하거나 투자를 받아 자금을 조달하고, 인사팀에선 적절한 사람들을 고용하고, 감독과 작가는 본격적으로 스토리를 써나갑니다.

여기서 잠깐 주요 애니메이션 제작비용을 살펴볼까요?
 제목 제작사(제작국가)
제작비
 라따뚜이  픽사(미국) 1500억원
 업  픽사(미국) 1750억원
 쿵푸 판다  드림웍스(미국) 1300억원
 아이스 에이지 3  블루 스카이(미국) 900억원
 빼꼼의 머그잔 여행
 알지 스튜디오(한국) 20억원
$1=1000원 기준, 자료출처 : 박스오피스 모조, 씨네서울

미국 애니메이션 제작비와 한국 제작비의 차이는 엄청나지요?? 우리나라에서 1000억원 이상 필요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고 하면 미친놈 소리밖에 못들을 것 같습니다. ㅠㅠ


자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프리프로덕션이 진행되는 동안 프로덕션 팀의 애니메이터들은 뭐하냐고요?  보통 큰 회사에서는 A라는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중에 그다음 영화 B(심지어 C,D,E의 영화)의 아이디어를 구상합니다. 그래서 애니메이터나 후반 작업을 할 사람들이 A영화를 끝내게 되면 잠시 쉬었다가 바로 B영화에 투입되어서 작업하게 되지요.


2. 스토리 구상 및 리서치

훌륭한 아이디어가 나와도 그걸 90분짜리 애니메이션용 스토리로 만들어 내는 건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기술적인 문제에 부딛혀서 빛을 못보거나 연기되는 경우도 있지요. 아바타나 스타워즈 1,2,3편이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렵게 만들어진 아이디어를 잘 살리기 위해서 감독과 제작진들은 밤샘회의를 하기도 하고 현장 답사를 가기도 합니다. 피가 마르지요.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게 쉬운게 아니니까요.

픽사의 영화 "업"에서는 남아메리카 베네수엘라의 엔젤폭포를 찾아갔고 "라따뚜이"에선 프랑스로 날아가 각종 레스토랑의 음식들을 맛보곤 했답니다.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회삿돈으로 해외여행을!!! 하지만 애니메이션 부서에선 별로 갈 일이 없습니다. ㅠㅠ   주로 감독과 프로듀서, 수석 스토리 아티스트, 수석 모델러 등이 가지요. 억울하면 감독 되어야겠군요. ㅎㅎ

이 영상은 라따뚜이 팟캐스트에 소개되었던 리서치트립 장면입니다. 흑흑 매우 부럽습니다.

 


3. 스토리 보드

2의 단계에서 영화의 스토리가 100% 완성되지 않습니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은 영상 미디엄이기 때문에 단지 글로만 되어있는 스토리로는 정확한 예측을 할 수가 없지요. 이야기를 그림과 영상으로 풀어 나가면서 예상과 다르게 재미없는 부분도 있을테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훌륭한 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심지어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는 도중에도 스토리를 바꾸어서 재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라따뚜이 스토리보드의 일부



보통 A4용지 반정도 되는 크기의 종이에 대략적인(하지만 스토리 전달은 명확해야 하는) 장면을 그려서 연속적으로 배열시켜 놓은 보드를 스토리 보드라고 합니다. 더 쉽게 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만화책을 벽에 주욱 붙여 놓은게 스토리 보드라고 생각하면 쉽겠네요. 그런 스토리보드들이 모여서

스토리보드 작업실. 일명 "전쟁의 방" 이라 불림


이렇게 벽을 점령합니다. 저기 큰 스토리보드 한개가 대략 짧게는 1-2분에서 길게는 5분~6분 정도의 애니메이션 분량입니다.  그러면 대략 90분짜리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서 몇 장의 스토리보드를 그려야 할까요?? 스토리 아티스트들의 말을 들어보면 보통 10,000여 장 정도 들어간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완성된 스토리를 위해서 버려진 스토리보드의 숫자까지 합치면??

이제 왜 스토리보드에 들어가는 그림은 "대충" 그리고 저 작업실을 "전쟁의 방" 이라 부르는지 감이 오시지요?? ^^      


4. 애니매틱스


맨 처음 보여드린 라따뚜이 영상의 처음 부분을 보면 스토리보드 용도로 그렸음직한 그림들이 타이밍을 맞추어서 나오는걸 볼 수 있습니다. 이걸 애니매틱스(Animatics)라고 부르는데요. 만들어진 스토리 보드를 실제 타이밍과 대사에 맞춰 편집해서 동영상으로 만들어 나중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을 때를 예상해보는 작업입니다. 

여기 이 영상을 한번 보시지요.


영상 중간중간에 네모박스, 화살표 등등이 보일텐데요. 이건 카메라나 캐릭터의 움직임, 특수효과 등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겁니다.



영화에서와는 달리 이런 애니매틱스를 만드는 또다른 중요한 이유가 하나 있는데요,
영화는 완성된 한 씬을 만들기 위해서 수십번 재촬영을 해서 그 중 제일 좋은 장면을 사용하면 됩니다. 촬영을 위해 한번 씬을 셋업해 놓으면 연기자가 계속 연기를 해서 촬영하면 되지만 애니메이션은 그런 식으로 하다간 반도 못만들고 예산을 다 써버릴겁니다.

장편 프로덕션에서 1초 분량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서 한명의 애니메이터가 어느 정도 일을 해야 하는지 아신다면 아마도 이해 되실 겁니다.

완성된 장면 1초를 만들기 위해서는 프리프로덕션은 빼놓고 이야기 해도 모델러, 애니메이터, 라이팅TD 등 거의 열명정도의 인력이 들어가는데, 이 중 애니메이터만 그 1초 분량의 애니메이션을 완성하는데 대략 1주일 정도의 시간을 소비합니다.  한 애니메이터의 시간당 임금을 20불이라 가정해도 하루 8시간 160불, 일주일이면 40시간이니 800불이네요. 여기다 다른 아티스트가 참여할때 드는 비용까지 계산하면....... 대충 같은 비용으로 10명이라 잡아도 1초에 8000불쯤 사용되나요??

다른 방법으로 계산해 볼까요?

라따뚜이 한편 만드는데 1500억이 들었다고 했지요. 여기서 후하게 마케팅과 프리프로덕션에 390억을 썼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럼 1110억원이 순 제작비라 치면 라따뚜이가 111분 짜리 영화니까 분당 10억원이네요? 그럼 60으로 나눠보면......?

1초당 1666만원의 프로덕션 제작비가 사용되었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계속 계산해 보는지 이해되시죠?? 애니메이션 한편 제작하는데 어마어마한 비용이 드는데 프리프로덕션에서 만에 하나 "삽질"을 해서 막바지에 가서야 문제점을 발견해서 재 작업을 해야 했을때, 손해보는 비용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돈 들어가기 전에 계속 이것저것 테스트 해보면서 최대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줄여가는것 만이 나중에 생길 더 큰 문제를 줄이는 지름길 되겠습니다. 비교적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애니매틱스를 만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제 애니매틱스까지 완성되고 나면 스토리에 대한 부분은 어느정도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비주얼은??


 
5. 컨셉 아트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영화나 애니메이션은 비주얼 스토리텔링 매체 입니다. 소설처럼 글로 이야기를 전달하는게 아니라 영상으로 전달하는거지요. 그렇다면 보이는 부분에 있어서도 멋지거나 이쁘거나 귀엽거나 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와서, 돈을 벌어야 하는게 회사들의 목표 되겠습니다.

같은 이야기라도 얼마나 재미있고 귀여운 캐릭터나 배경으로 보여주느냐, 또 얼마나 스토리에 맞게 생겨먹은 캐릭터로 이야기를 풀어 가느냐에 따라서 영화의 성패가 왔다갔다 합니다. 한번 상상해 보세요. 호머심슨 캐릭터들이 3D로 나와서 "업" 에 출연해서 연기한다면, 과연????

"업"에 출연할 거라구?? 도저히 감정이입이 안되는뎁쇼??



 
그리하여 컨셉아트에서는 최대한 다양한 캐릭터들, 하지만 스토리에 부합되는 캐릭터들을 만들어 봅니다.
 

인크레더블스 컨셉아트, 가운데 저 녀석이 설마 JackJack?





영화 "업" 시퀀스 칼라 컨셉




"쿵푸팬더" 캐릭터 컨셉



"드래곤 길들이기" 시퀀스 칼라 컨셉



이렇게 수십 수백장의 컨셉아트를 제작하고 감독과 수퍼바이저들과의 회의를 거쳐서 최종 컨셉이 선정이 되면 목업 작업을 하게 됩니다.

"카" 의 캐릭터 클레이 목업



여기서 바로 3D 모델링 작업을 들어가지 않는 이유는 실제 3D 클레이 모델을 만들어 보면서 컨셉에서 3D로 옮길 때 문제되는 부분은 없는지 테스트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렇게 클레이 목업이 만들어지고 나면 이걸 3D 스캐너로 돌려서 3D 데이타를 추출해서 제작하는 방법을 쓰기도 하고, 단순히 3D 모델러들이 레퍼런스로 참고하기 위해 쓰기도 한답니다. 스튜디오에 따라서 "케바케" 인거죠.

이렇게 해서 기나긴 프리 프로덕션이 끝이 나게 됩니다. 여기까지 보통 얼마나 걸리는지 궁금하시죠? 픽사의 경우 짧게는 2년, 길게는 4년 정도의 기간을 거친답니다. 드림웍스도 못해도 2-3년의 시간은 보낼겁니다. 3D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면서 3D 툴은 전혀 쓰지도 않고 저정도 기간을 제작비를 쓰면서 보낸다는게 쉽게 이해되지 않으시지요?

하지만 저렇게 기본중의 기본에서부터 충실하게 준비하고 나야 프로덕션 단계에 들어가서 "삽질"을 할 확률을 줄이게 됩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프로덕션 단계에 들어가면 지금까지 들어갔던 비용의 몇배는 더 들어가게 되니까요. 또한 현명한 회사들은 여기까지의 프리프로덕션 단계를 검토한 후에 "이건 만들어봤자 그다지 재미 없겠다"고 결론내면 과감히 버려버립니다. 그게 남는 장사거든요.


이제 다음 단계는 프로덕션 단계입니다. 실제로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투입되여 본격적으로 영화를 만들어가는 단계이지요. 글이 너무 길어지는 관계로 프로덕션 단계부터는 다음 포스팅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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