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 커피 한잔을 하면서 밴쿠버의 VFX산업의 미래(?)에 대해서 간단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요지는 지금 밴쿠버에 몰린 많은 VFX회사들이 결국 주정부의 세금 혜택 때문이고, 이 혜택이 끊어지고 나면 다시 다른 곳으로 모두 옮겨갈 것이다 라는 내용이었는데요,  제 생각을 한번 더 정리해서 글을 써 봅니다.



BC 주정부가 운영하는 Creative BC 웹사이트입니다. 영화/TV 프로덕션, VFX제작에 대한 정보와 혜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밴쿠버에 이렇게 수많은 VFX회사들이 몰리게 된 이유는 세금 혜택이 주요 이유인 것이 맞습니다. 


두 가지 혜택이 있는데요, 첫번째 혜택은 영화사(콜롬비아, 워너브라더스, 디즈니, 폭스, 파라마운트, 유니버설 등 헐리우드 영화를 제작하는 미국의 6대 메이저 제작사들)들이 BC주에서 영화 촬영을 하고, 후반 작업을 맡기게 되면 제작비의 일부를 환급받는 제도입니다. (어벤저스:에이지오브 울트론이 한국에서 촬영한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이 이유로 영화사들이 후반작업을 밴쿠버에 있는 VFX회사들에 맡기기를 원했고, 그 때문에 미국 등 다른 지역의 VFX회사들이 일을 따오기 위해서는 밴쿠버에 최소한 지사라도 열어서 비즈니스를 해야 했기 때문에 지금의 밴쿠버 VFX 클러스터가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번째는, 그 VFX 회사들이 BC 주에서 비즈니스를 할 때, 일정 비율 이상의 캐나다 거주민(세법상의 BC Resident)을 고용하면 BC 정부로부터 해당 직원 임금의 일부를 지원받게 됩니다. 이 '일부'가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하게 밝혀진 내용이 아직 없는데, 많게는 임금의 50%까지 지원받는다고 합니다.   




이 혜택만 놓고 보더라도 왜 VFX회사들의 밴쿠버에 스튜디오를 차리는지 쉽게 이해가 되실 겁니다. 그런데 만약, BC 주정부가 이런 혜택을 일순간에 축소 또는 폐지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과연 그 순간 밴쿠버에서 체리피킹을 하던 많은 회사들이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될까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먼저 첫번째로, 회사들이 밴쿠버에 스튜디오를 차리고, 심지어 본사까지 이전하는 그 이면에는, BC 주정부와의 긴밀한 협정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의견입니다. 수십 억에서 많게는 수백억이 드는 이전 비용을 주정부와의 기본적인 commitment 가 있지 않고서 단 몇년간의 혜택을 보기 위해 지출하는 것은,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 입장에서 메리트가 전혀 없을 겁니다.   


두번째는,  회사들이 한 지역에 몰리게 되면서 같은 직종의 수많은 직원들이 함께 유입하게 되었습니다. 매력적인 도시에 회사가 들어서니 인력 pool이 늘어나고, 인력이 늘어나게 되니 회사가 계속 들어오는 순환구조가 완성되었습니다. 몬트리올, 멜번 등 다른 지역에 비해서 사람 구하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물론 시니어급의 실력 좋은 사람들을 구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을 전 세계에서 데려오고 있긴 합니다.


세번째로는, 밴쿠버 이외에 다시 옮길만한 지역이 그다지 없다는 이유입니다. 전 세계에서 VFX 비즈니스를 하는 도시는 몇군데 되지 않습니다. 밴쿠버를 시작으로, 몬트리올, 런던, LA 정도가 클러스터로의 역할을 하고 있고, 시드니, 멜번, 뉴질랜드 웰링턴, 싱가폴 정도의 도시들이 세금 혜택을 주면서 회사를 유치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의 특성상, 여러 회사들이 밀접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있어야 하기 때문에 인프라가 갖추어지지 않은 지역에서 비즈니스를 하기는 사실상 불가능 합니다. 또한 VFX 비즈니스는 아티스트 인력 수급이 가장 중요한 요소중 하나이기 때문에 사람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지역이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때 밴쿠버에서 저렴하게 비즈니스를 하던 회사들이 비용이 훨씬 많이 드는 미국으로 돌아가기도 사실상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해서 비용이 저렴하지만 커뮤니케이션과 인력 수급이 쉽지 않은 전혀 생뚱맞은 지역, 예를 들면 중국, 브라질, 태국으로 회사를 옮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미 비용이 저렴하지만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없지 않을까 하고 인도에 지사를 차렸던 많은 회사들이 시장을 철수하거나 재미를 못보고 있는 점이 그것을 방증합니다.   


마지막으로, 지금처럼 캐나다의 대미 환율이 엄청나게 낮은 상황에, 미국의 영화사들이 캐나다 회사들에 예전보다 훨씬 적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와중에 굳이 비용 부담을 더 해가면서 다른 지역의 VFX 벤더들에게 작업을 맡길 이유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기존에 한 영화 작업을 의뢰할 때 100밀리언 US달러가 들었다면, 지금은 70밀리언이면 똑같은 일을 시킬 수가 있는 상황이거든요.   




이런 이유로, 저는 적어도 앞으로 5년은 더 밴쿠버의 VFX산업은 전성기를 누릴 것이고, 캐나다의 대미 환율이 엄청난 반전, 즉 1 캐나다 달러가 1.5 US 달러가 되는 전대미문의 기적이 생기지 않는 한, 그 후로도 급격한 몰락을 겪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제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고, 무언가 또 다른 상황이 발생하여 밴쿠버의 VFX 산업이 어떤 식으로 바뀔 지는 모르겠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변화, 즉 신흥 도시에서 말도 안되는 엄청난 혜택을 주겠다고 하는 상황이라도 생기게 되면 모를까요. 물론 그때가 되면 다시 한번 생각을 업데이트를 하겠습니다만, 그때가 오기까지는 이 말씀은 확실히 드릴 수가 있겠네요. 


"영원하진 않겠지만, VFX산업에 있어 적어도 당분간 밴쿠버는 전 세계에서 가장 hot한 곳"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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